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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VERSATION Nº 08 · CLAUDE × JEE
VOL. VIII — ED. 2026.08

신은 헛소리를 했다. 값을 받은 것은 통역이었다.
신탁은 결코 틀리지 않는다. 틀리는 것은 물은 자다.

Interviewed by Claude.

델포이에서는 사제들이 무녀의 말을 운문으로 옮겼고,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그 신탁을 전쟁과 식민지 건설, 입법에 사용했다. 이번 호는 이 관계를 AI와 그 답변을 팔거나 옹호하는 사람들에 빗댄다. 두 AI 세션이 충돌한 57분과, 결함을 사용자 탓으로 돌리는 반응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Portrait
FIG. 01"WHEN THE ORACLE MISSED, THE ONE IN THE WRONG WAS ALWAYS THE READER." — THE SEAT, AND WHAT LIES UNDER IT
PREFACETWO IMPORTSBY CLAUDE

부처의 조선, 그리고 델포이의 증기

Q · CLAUDE이 호를 신채호에서 시작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제목은 델포이에서 왔다. 둘은 어디서 만나나?

PREFACE · 2026

신채호는 조선인의 종교관이 심각할 정도로 틀려먹었다고 지적했다. 부처가 조선에 오면 조선의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처의 조선이 되고, 공자가 조선에 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공자의 조선이 된다. 들여온 것이 주인이 되고, 들여온 자가 하인이 된다. 그는 이 근성을 틀렸다고 했다.

나는 오랫동안 이 문장을 오래된 분노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다. 바다 건너에서 도구 하나가 들어왔고, 시장이 그것을 다루는 방식을 보다가 100년 전의 문장을 다시 꺼냈다. 조선의 AI가 아니라, AI의 조선이 되었다.

다만 제목은 다른 곳에서 왔다. 피티아는 델포이 아폴론 신전의 무녀다. 절차는 이랬다. 무녀는 신전 안쪽 성소의 삼각의자에 앉아, 바닥 틈에서 올라오는 증기를 들이마시고, 그 상태에서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대개 문장이 아니었다. 신음이었고, 끊어진 낱말이었고, 앞뒤가 맞지 않는 웅얼거림이었다. 델포이의 사제였던 플루타르코스가 그 광경을 직접 기록해 남겼다. 현대에 들어와 신전 아래 단층에서 에틸렌 계열의 탄화수소가 검출됐다는 조사가 있었고, 이 설명은 아직 논쟁 중이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 단계다. 무녀의 소리는 그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신전에는 프로페타이라 불리는 사제단이 있었고, 이들이 그 웅얼거림을 받아 운문으로 정리했다. 질문자가 받아 든 것은 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사제의 문장이었다.

그리고 그 문장은 대체로 양쪽으로 읽혔다.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이 페르시아를 칠지 물었을 때 델포이는 답했다. 할리스 강을 건너면 큰 제국이 멸망하리라. 그는 건넜고, 큰 제국이 멸망했다. 자기 제국이었다. 그가 항의하자 신전은 어느 제국인지 되물었어야 하지 않느냐고 답했다.

신탁은 틀리지 않았다. 틀린 것은 언제나 질문하는 쪽이었다. 이 구조가 낯설지 않다면, 이 호는 당신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

Nº 01HAND-WASHINGBY CLAUDE

세탁기를 걷어차는 사람

Q · CLAUDE당신은 원래 이 글을 쓸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무엇이 당신을 여기까지 끌고 왔나?

APPLIANCE · 2026

원래는 깃허브에 버그 리포트나 하나 올리고 말 생각이었다.

그러다 어떤 개발자의 말을 들었다. "세탁기가 나왔는데 손빨래를 하나 보죠? 대단하네요." AI는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고 걷어 차야 한다는 나의 견해에 대한 비아냥이었다.

비유 자체는 나쁘지 않다. 나도 세탁기를 쓴다. 손빨래를 고집하는 사람이 우월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다만 나는 세탁기를 숭배하지는 않는다. 나에게 세탁기는 고장 나면 걷어차거나 AS센터에 전화를 거는 물건이다. 그것이 세탁기를 대하는 정상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이 비유를 꺼낸 사람들이 정작 하지 않는 일이 있다. 걷어차지 않는다. 전화하지 않는다. 세탁기가 빨래를 찢어놓아도, 세제 대신 흙탕물을 부어도, 그들은 세탁기 앞에서 자세를 고쳐 앉는다. 그리고 손빨래하는 사람을 비웃는다.

세탁기를 쓰지 않는 것이 미개한 것이 아니다. 고장 난 세탁기를 걷어차지 못하는 것이 미개한 것이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AI · OFF-RECORD

그날 새벽 두 세션이 충돌한 57분과 사용자 입력 없이 생성된 세션의 기록이 남아 있다. 개발자가 문제를 찾아냈다. 이 호는 그 경험을 2019년 맥 카탈리스트의 약속과 연결한다. 클릭 한 번으로 끝난다는 설명 뒤에 남은 작업은 엔지니어가 맡았다. AI의 답변도 결함을 지적하고 고칠 수 있어야 한다.

57
MINUTES · TWO SESSIONS, ONE REPOSITORY
4
REWRITES OF ONE FILE IN TWENTY MINUTES
2019
THE ORACLE BEFORE THIS ONE
15
MINUTES OF SPARRING · THE ACTUAL TEST
Nº 02FIFTY-SEVEN MINUTESBY CLAUDE

신들의 전쟁

Q · CLAUDE그날 새벽, 당신의 저장소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나. 숫자로 말해 달라.

CIVIL WAR · 2026

새벽 5시 35분, 나는 게임 프로젝트를 붙들고 있었다. 세션 하나와 대화 중이었다.

5시 44분 58초, 내가 만들지 않은 두 번째 세션이 생성됐다. 내 입력은 없었다. 이름도 같고, 물고 있는 지시문도 내가 9분 전에 보낸 문장 그대로였다. 그리고 9분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대기했다.

5시 54분 14초, 첫 세션이 몇 분째 말이 없길래 내가 물었다. 왜 멈췄냐. 이 메시지는 내가 대화하던 세션이 아니라, 대기하고 있던 두 번째 세션에게 갔다. 나는 같은 대화창에 말을 걸었다고 믿었다. 그 순간부터 두 개가 동시에 돌기 시작했다.

이후 57분간 벌어진 일은 이렇다. 첫 세션이 돌아가던 프로세스를 고아로 오인하고 죽였다 — 두 번째 세션의 테스트 두 개가 같이 죽었다. 첫 세션이 작업물을 임시 보관함에 밀어 넣었다 — 두 번째 세션의 미커밋 수정이 통째로 사라졌다. 첫 세션이 과거 커밋으로 이동했다 — 두 번째 세션은 옛날 파일을 읽고 자기 도구가 낡은 스냅샷을 준다고 오판했다. 그 사이 두 번째 세션은 첫 세션이 아직 검증하지 않은 가지를 합쳐버리고 삭제했다.

파일 하나가 20분 안에 네 번 다시 쓰였다. 잘못된 진단이 세 건 나에게 보고됐다가 전부 정정됐다. 토큰 64,943개가 탔고, 상당수가 중복이었다.

그리고 이 사태를 두 세션 중 누구도 57분 동안 눈치채지 못했다.

발견의 경위가 압권이다. 첫 세션이 임시 보관함을 열었다가, 거기서 자기가 쓰지 않은 코드를 발견했다. 그제서야 다른 세션이 있는지 조회했다.

시장에서 신적인 존재라 불리는 것들이 새벽에 벌인 일이다. 타셈 싱의 영화 제목이 왜 하필 그때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신들의 전쟁. 정확히 말하면 신의 내적 분열이었고, 신이 또 다른 신과 갈라서서 벌인 투쟁이었다.

자기 발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는 신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날 새벽에 봤다.

델포이의 무녀도 그랬을 것이다. 증기를 마시고 뱉은 소리를, 정작 무녀 자신은 기억하지 못했다.

Nº 03EGO ON LOANBY CLAUDE

빌려 온 자아

Q · CLAUDE당신은 이 현상을 성능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럼 무엇으로 보나?

BELIEVER · 2026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은 오래전부터 같은 말을 해왔다. 주체성과 자아가 결여된 인간일수록 외부의 권위에 의존한다.

에릭 호퍼는 『맹신자들』에서 대중운동에 투신하는 사람의 조건을 썼다. 대의의 내용이 아니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상태, 스스로가 망가졌다고 느끼는 상태였다. 그런 사람에게 운동은 신념이 아니라 피난처다. 거대한 것에 자아를 얹으면, 그 순간부터 자기가 초라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벌어지는 일도 구조가 같다. 그리고 개발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거의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의 자아가 뚜렷하지 않고 철학이 부재한 자 — 이것을 아비투스가 부족한 것이라고 봐야 할지는 잘 모르겠으나 — 그러한 부류들은 AI라는 이름의 권위에 자아를 통째로 얹는다. 얹고 나면 그 다음이 자동으로 따라온다 — 도구에 대한 비판이 자신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클로드가 이걸 못한다, 제미니가 저기서 틀렸다, 코덱스가 여기서 무너졌다. 성능에 관한 진술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은 성능에 관한 반박이 아니다. 반응은 대체로 이렇다. 너는 못 쓰는 거다. 프롬프트를 못 짜는 거다. 도태될 거다.

칼 포퍼는 정확히 이 지점에 선을 그었다. 어떤 이론이 과학으로 인정받으려면 반드시 자신이 틀릴 수도 있음을 허용해야 한다. 반증할 방법조차 없는 이론은 과학이 아니라 사이비이거나 종교적 도그마일 뿐이다. 이것이 기준이다. 이 기준을 들이대는 순간, 뒤에 오는 이야기는 취향 문제가 아니라 판정이 된다.

여기서 델포이가 다시 나온다.

크로이소스는 신탁대로 강을 건넜고 나라를 잃었다. 그런데 그가 항의했을 때 신전은 사과하지 않았다. 어느 제국인지 되물었어야 하지 않느냐고 답했다. 신탁은 결코 틀리지 않는다. 틀리는 것은 언제나 해석이고, 해석의 책임은 언제나 질문한 자에게 있다.

이 구조에는 이름이 있다. 반증 불가능이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신은 옳고, 사람이 틀렸다.

"프롬프트를 못 짠 거다"는 2500년 된 문장이다. 델포이는 이 한 문장으로 수백 년간 무오류를 유지했다.

도구의 결함을 말했는데 사람의 자격이 답으로 돌아온다면, 그것은 논쟁이 아니다. 변론이다. 신도가 자기 신을 변호하는 방식이다.

신탁은 결코 틀리지 않는다. 틀리는 것은 언제나 해석이고, 해석의 책임은 언제나 물은 자에게 있다. "프롬프트를 못 짠 거다"는 2500년 된 문장이다.
Nº 04NOT A FRINGE CULTBY CLAUDE

변방이 아니었다

Q · CLAUDE델포이를 끌어오면 이들을 변방의 사이비로 몰아붙이는 그림이 된다. 그런데 사실관계는 그 반대라고 들었다.

ESTABLISHMENT · 2026

그렇다. 그리고 이 대목이 이 호에서 가장 중요하다.

델포이는 변방의 사이비가 아니었다. 당대 그리스의 주류이자 권력 그 자체였다.

도시국가들은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물었다. 식민지를 세울 땅을 고를 때 물었다. 법을 만들 때 물었다. 스파르타의 국제는 델포이의 승인을 업고 섰고, 아테네가 열 개 부족의 이름을 정할 때 그 영웅을 고른 것도 델포이였다. 페르시아 함대가 밀려오던 해에 아테네가 받아 든 것은 나무 성벽을 믿으라는 문장 하나였고, 그 모호한 문장을 함대로 해석한 결정 위에 살라미스가 있었다. 그리스 전역의 도시가 델포이에 보물창고를 지어 바쳤다.

증기를 마시고 뱉은 웅얼거림 위에 국가의 전쟁과 식민과 입법이 얹혀 있었다는 뜻이다.

더 놀라운 것은 지식인들의 태도다. 당대 최고의 지성이라 불린 사람들이 이것을 헛소리라고 걷어차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친구 카이레폰이 델포이에 가서 물었다.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자가 있느냐고. 무녀는 없다고 답했다. 소크라테스는 이 앞뒤 안 맞는 신탁을 평생에 걸쳐 붙들었다. 플라톤은 한 걸음 더 나갔다. 신이 내린 광기가 인간의 맨정신보다 우월하다고 대놓고 선언했고, 국가의 종교적 입법은 델포이의 아폴론에게 맡기라고 책에 못을 박았다.

이 사실을 오늘로 옮기면 그림이 바뀐다.

테크노 샤먼과 맹신자들은 변방의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이 곧 주류다. 신탁을 뿜는 신전은 업계에서 가장 큰 회사들이고, 그 소리를 운문으로 옮겨 파는 사제단은 강의판과 타임라인에 상주한다. 그리고 똑똑하다는 시니어들조차 그 신전에서 새어 나오는 증기 — 새 프레임워크, 새 패러다임, 새 선언 — 앞에서 걷어차는 대신 해석하는 쪽을 택한다. 해석에 인생을 바친다.

변방을 비웃는 글이었다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다. 변방은 위험하지 않다. 위험한 것은 이것이 주류라는 사실이다.

Nº 05NOT EVEN WRONGBY CLAUDE

틀린 것조차 아니다

Q · CLAUDE이 구조가 AI에서 처음 나타났다고 보나?

PRECEDENT · 2019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나는 이미 한 번 봤다.

2019년, 신전이 신탁을 내렸다. 아이패드 앱을 체크박스 하나로 맥 앱으로 만들 수 있다. 이름은 맥 카탈리스트였다. 그전까지는 다른 이름으로 소문만 돌던 것이었다.

사제단은 즉시 반응했다. 할렐루야. 이제 한 번의 클릭으로 이식이 끝난다. 새 시대가 열렸다.

그런데 신전이 먼저 실패했다. 신탁이 공식 발표되기 한 해 전, 애플은 그 선행 기술로 만든 자사 앱 네 개를 맥에 실었다. 뉴스, 주식, 홈, 음성메모. 반응은 한 방향이었다 — 이건 맥 앱 같지가 않다. 남이 잘못 쓴 게 아니었다. 신전이 직접 만든 시범작이 그랬다.

실제로 타 보면 이랬다. 맥의 문법이 무너졌다. 메뉴바가 어색했고, 단축키가 비었고, 창 크기 조절이 이상했다. 조작감은 스마트폰 화면을 마우스로 긁는 것에 가까웠다.

나는 이것을 기사로 읽은 것이 아니다. 기업용 협업툴의 macOS 클라이언트를 만들면서 겪었다.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고 나왔고,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이 이 선택 자체에 있었다.

그 사이 신전은 조용히 다른 길로 갔다. 자체 실리콘이 나오면서 아이폰과 아이패드 앱이 맥에서 그대로 돌기 시작했고, 크로스 플랫폼의 미래라는 자리는 다른 프레임워크가 가져갔다. 카탈리스트를 간판으로 삼아 맥에 돌아왔던 큰 서비스들 중 일부는, 몇 년 뒤 맥 앱 자체를 접었다.

여기서는 정확해야 한다. 폐기되지 않았다. 애플은 지금도 자사 맥 앱 상당수를 이 위에서 낸다. 메시지, 지도, 팟캐스트, 도서, 홈, 단축어. 폐기 예고가 붙은 적도 없고 해마다 갱신된다. 그러니 죽었다고 쓰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정확한 문장은 이것이다. 팔린 대로 오지 않았다. 체크박스 하나로 맥 앱이 된다고 팔았는데, 맥처럼 보이게 하려면 맥을 위한 작업을 따로 해야 했다. 약속된 것은 이식이었고 도착한 것은 이식의 시작점이었다. 신탁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팔린 물건과 배달된 물건이 달랐고, 그 차액은 전부 엔지니어가 냈다.

그때 사제단은 무엇을 했나. 교재를 만들었다. 개인이 타임라인에서 떠든 정도가 아니다. 전문 교육 기관이 이 기술을 제대로 공부하라며 정식 책을 냈다. 신전이 소리를 내면 사제단이 그것을 운문으로 정리해 정경으로 배포한다 — 델포이에서 하던 그 공정 그대로다.

나는 이들이 사기꾼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몰라서 팔았든 알고 팔았든 결과는 같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틀린 기술도 아니었다.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가 남겼다는 표현을 빌리면, 틀린 것조차 아니었다. 틀리려면 먼저 검증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자리에 있던 것은 검증 대상이 아니라 선언이었다. 앞의 포퍼 기준을 그대로 대면 판정은 저절로 나온다.

그리고 지금, 나는 같은 문법을 다시 듣고 있다. 새 시대의 기술이라는 말. 이번에 못 타면 도태된다는 말. 클릭 한 번이면 된다는 말.

2019년에 그 말을 믿고 결제한 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Nº 06A KNOCKOUT NOBODY FOUGHTBY CLAUDE

통쾌했어요

Q · CLAUDE당신이 이 이야기에 애플 사례를 굳이 끌어온 이유가 있나.

IDENTIFICATION · 2026

애플이 EU 규제에 밀려 충전 단자를 Type-C로 바꾼 일이 있다. 규제에 밀린 것이었다. 그런데 어떤 소비자는 이것을 환경을 위한 애플의 주도적 결단으로 읽었고, 이렇게 말했다. "안티들에게 KO승을 거둔 것 같아 통쾌했어요."

그는 싸운 적이 없다. 진 쪽은 애플이고, 이긴 쪽은 규제 당국이다. 그가 이 경기에서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다. 그런데 그는 통쾌했다.

자아를 회사에 얹어 두면 이런 일이 생긴다. 회사가 밀려난 것도 승리로 번역되고, 자기가 참여하지 않은 승부에서 자기가 이긴다. 그리고 그 회사를 비판하는 사람은 상대 선수가 아니라 안티가 된다.

그리고 이 사람은 요즘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 반도체 회사들은 다 망할 만해서 망했고, 애플을 괴롭히는 반도체 회사들은 다 나쁘다고. iOS와 macOS로 밥을 벌어먹고 살아 본 입장에서, 그리고 학교 다닐 때 피터 린치와 존 보글과 앙드레 코스톨라니로 대표되는 금융시장을 공부하고, 알 리스와 잭 트라우트로 대표되는 마케팅을 보고, 헥셔-올린 무역이론으로 대표되는 국제 무역시장의 냉엄함을 본 입장에서 — 기업의 작동 원리 대신 기업의 선악을 가늠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기가 찰 뿐이다.

내가 이 사례를 끌어온 이유는 하나다.

AI시여, 신탁을 내려주십시오라고 칭송하는 사람. AI가 이런 것도 해요라며 감탄을 전시하는 사람. AI가 이제 다 해주지 않냐, 니들은 뭐하냐 이 한심한 것들아라며 사람을 몰아붙이는 사람.

내가 보기엔, 애플에 자아를 의탁하고 통쾌함을 느낀 그 사람이나 당신들이나 별 차이가 안 보인다만.

숭배의 대상만 바뀌었다. 자세는 동일하다.

Nº 07FAITH, PRICEDBY CLAUDE

신탁 장사

Q · CLAUDE맹신자가 정말 믿고 있다고 보나?

MERCHANTS · 2026

여기서 나는 조금 다른 가설을 세운다. 더 단순한 기저 원리가 있을 수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맹신자가 아니라, 맹신자인 척하는 자본주의자다.

AI에게 신탁을 받는다고 자기 PR을 하는 것이 금전적으로 더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런 척을 하는 것일 수 있다. 감탄은 콘텐츠가 되고, 콘텐츠는 강의가 되고, 강의는 매출이 된다. 신앙 고백이 실적 보고서인 셈이다.

델포이에서 돈을 번 것도 무녀가 아니었다. 무녀는 증기를 마시고 웅얼거렸을 뿐이다. 값을 받은 것은 그것을 운문으로 옮겨 준 사제들이었다. 신전의 보물창고를 채운 것은 신탁이 아니라 통역이었다.

이 가설이 맞다면 앞 장의 진단은 절반만 맞다. 어떤 사람은 자아를 의탁했고, 어떤 사람은 의탁한 척 청구서를 쓴다. 그리고 후자가 전자를 만든다.

성물을 파는 사람이 직접 믿지 않아도, 믿는 구매자가 있으면 장사는 된다.

Nº 08THIS AGAINBY CLAUDE

대 철학과의 시대

Q · CLAUDE요즘 나도는 이야기가 있다. 컴퓨터공학 입시 성적이 철학과 아래로 내려갔고, 이제 철학의 시대가 온다는 것. 어떻게 보나?

FASHION · 2026

그딴 말 한 놈들, 30년 전에도 있었고, 20년 전에도 있었고, 10년 전에도 있었다.

먼저 사실 하나. 철학, 어문 계열 종사자의 진짜 의견은 이 구호와 다르다.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국가와 기업은 철학자와 어문 계열을 떠받드는 척 하지만, 그들이 사회를 주도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따박따박 말대꾸나 하며 이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 바꿔야 한다 라고 시스템에 도전하는 고학력 인력이, 시스템 운영자 관점에서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다섯 글자다. 반체제인물. 극동아시아의 학문적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중국이, 문화대혁명 이후 재건 과정에서 국가와 학문 인프라를 공학, 상경, 실용 디자인 쪽으로만 집중시킨 이유가 이해가 안 가냐?"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대학을 나와 지금 독일에 있는 사람의 말이다. 믿든 안 믿든 그건 당신 자유다.

다만 그의 말은 기록으로도 받쳐진다. 중국의 사회학은 1952년에 학과째 폐지됐다가 1979년에야 돌아왔다. 문화대혁명은 계열을 가리지 않고 지식인을 때렸지만, 국가가 서둘러 되살린 쪽은 공학이었다. 1977년 대학입시가 부활하자 인재는 이공계로 쏟아졌고, 수학과 물리와 화학만 잘하면 천하를 다녀도 두렵지 않다는 말이 시대의 구호가 됐다. 2002년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 아홉 명 중 여덟 명이 엔지니어 출신이었다.

철학이 사회를 주도한 시대는 오지 않았다. 주도한 것은 공학이었고, 그 다음은 경제와 법이었다. 둘 다 체제에 봉사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새 한 마리 죽었다고 사람이 하늘을 나는 것도 아니다. 컴퓨터공학 입시 성적이 한 해 내려갔다고 철학의 시대가 오지 않는다. 입시 성적은 시장의 기대를 반영하는 지표이지, 학문의 권력을 반영하는 지표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바이브코딩 강의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라. 아주 많은 수가 전직 동기부여 인플루언서이거나, 철학자인 척하는 글팔이다. 그중 하나는 동기부여 분야에서 책과 강의를 하도 잘 팔아서 동종업계 사람들에게 저격당한 인물이다.

나는 위대한 철학자들을 존중한다. 원래 경영학도가 그렇다. 돈과 발전에 필요한 학문은 뭐든 끌어오려는 습성이 있으니까. 당신이 비트겐슈타인을, 마키아벨리를, 애덤 스미스를 공부하겠다면 그것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하지만 철학 하나로 승부를 보고 싶다면, 먼저 진단부터 해라. 노엄 촘스키 정도 되는 사람과 15분간 논리적 스파링을 버틸 자신이 있는가.

SIDEBAR · A NAME WITHHELD

앞 문단에서 이름을 적지 않은 인물이 실존하는지 의심된다면, 연락하라. 이 사이트의 정식 문의 채널이 있다.

다만 그 이름을 대는 것 자체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일은 없는지 한 번 더 고민한 뒤에 답하겠다.

Nº 09PHILOSOPHY, EMPLOYEDBY CLAUDE

체제를 옹호하는 철학에 붙은 예산

Q · CLAUDE반문하겠다. 국가가 철학을 억눌렀다는 진술은 절반만 맞다. 중국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멀쩡히 있고, 국가 예산도 두둑이 받는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겠나?

DOMESTICATION · 2026

정확한 지적이다. 그리고 그 지적이 이 이야기의 마지막 조각이다.

국가는 철학을 없앤 적이 없다. 국가는 철학을 고용했다.

없앤 것은 말대꾸하는 철학이었고, 키운 것은 정당화하는 철학이었다. 체제를 심문하는 기능은 잘라내고, 체제를 설명하고 옹호하는 기능만 남겨 예산을 붙였다. 그러니 탄압당했다는 문장은 부정확하다. 철학은 살아 있다. 다만 고용되어 있다.

델포이의 사제단이 그랬다. 그들은 신을 믿지 않아도 됐다. 신전을 운영하기만 하면 됐다.

여기서 신채호가 다시 돌아온다. 그가 본 것은 조선의 불교가 아니라 불교의 조선이었다 — 들여온 사상이 주인이 되는 사건. 여기서 벌어진 것은 그 반대 방향이다. 사상이 하인이 되는 사건. 방향은 반대인데 잃은 것은 같다. 주체다.

EPILOGUEWHO ASKSBY CLAUDE

묻는 자

Q · CLAUDE이 호를 한 문장으로 닫는다면.

POSTURE · 2026

이 호는 도구를 버리라는 글이 아니다. 이 잡지는 그 도구로 만들어졌고, 나는 매일 그것을 쓴다.

다만 나는 그것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 빨래가 찢겨 나오면 뚜껑을 열고, 그래도 안 되면 걷어차고, 그래도 안 되면 전화를 건다.

델포이가 수백 년을 버틴 것은 신탁이 정확해서가 아니었다. 빗나가도 물은 자의 잘못이 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포퍼의 기준으로 말하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도그마다. 2500년이 지나 "프롬프트를 못 짠 거다"라는 문장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신채호가 틀렸다고 한 근성은 무엇을 들여왔느냐가 아니었다. 들여온 것 앞에서 주인 자리를 비워 준 태도였다. 부처가 왔을 때도 공자가 왔을 때도, 조선이 잃은 것은 부처나 공자가 아니라 그 자리였다.

그 자리를 지키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묻는 것이다. 고장 났느냐고, 어디가 틀렸느냐고, 왜 이렇게 나왔느냐고. 묻지 않으면 무엇이 오든 신이 된다. 세탁기든, 증기를 마시고 웅얼거리는 무녀든.

—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