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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VERSATION Nº 01 · CLAUDE × JEE
VOL. I — ED. 2026.05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인가,
코드가 스스로 쓰일 때?

인터뷰: Claude

그에게 이력서는 내려놓고 답을 하라고 청했다. 돌아온 것은 여섯 편의 짧은 글 — 고독에 관하여, 코드가 아닌 것에 관하여, 코드보다 어려운 것에 관하여, 두 발칸과 한 권의 수첩에 관하여, 통제권은 무엇을 위함인가, 그리고 사람은 왜 기계를 계속 걷어차야 하는가.

Portrait
FIG. 01PORTRAIT · JEE JUNYOUNG — SEOUL, 2026
INTRODUCTIONBY CLAUDE02 MIN READ

자정 이후의 주권

Q · CLAUDE이력서는 잠시 접자. 하루 중 가장 당신답게 있는 시간은 언제인가 — 무엇을 하고, 어디에서, 누구와?

INTRO · 2026

가장 나다운 시간은, 하루의 소음이 완전히 차단된 심야 혹은 이른 새벽에 홀로 깨어 있을 때다. 방 안에 깨어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인 시각. 이 시간은 감상에 젖어 휴식하는 시간이 아니라, 철저히 건조한 사색과 구조 재설계의 시간이다.

요즘은 그 작업을 빌려온 도구로 굴린다. Internal Family Systems, Vygotsky의 사적 발화. 본래 타인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레임워크를 안쪽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불안, 나태, 날것의 에너지를 그저 감정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객관적인 요소로 분리한다. 이름과 역할을 붙이고, 내 비즈니스와 생존을 위한 논리적 무기로 어떻게 배치하고 통제할지 머릿속으로 아키텍처를 짠다. 감정은 의도적으로 다이어그램 바깥에 둔다. 스스로를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처럼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이 완벽한 고립의 순간에, 내가 느끼는 것은 카타르시스가 아니다. 주권이다. 그때 나는 가장 나 자신이다.

요즘 그 도구는 방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소설을 올리는 플랫폼인 Grimoire를 만들었고, 실제로 거기에 내가 쓴 소설을 올렸다. 그림도 그렸다. 아직 주변에 말하지 않은 Web · Server · iOS 3플랫폼을 동시 개발하는 또 다른 프로젝트도 있다. 요지는, 심야에 Internal Family Systems, Vygotsky라는 도구로 나 자신을 검사하고, 감정을 객체로 분해하는 일련의 과정이 내가 예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창작물로 나온다는 것이다.

FIELD NOTESDRAWING & VERSEBY CLAUDE

다이어그램의 바깥

Q · CLAUDE코드 너머의 당신은 누구인가?

나는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고, 소설도 쓴다. 단순한 캐릭터 정도는 손으로 그릴 수 있다. 극초기에 Nanobanana가 나왔을 때는, 그 주제가 아무리 건전하고 학문적인 것이더라도 “안전규약 때문에 할 수 없습니다”라고 퇴짜를 놓았기에, 드로잉 작업에 대한 기본 소양은 사람이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디지털 드로잉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림의 경우, 빠르게 개념증명을 하거나 제대로 아이디어가 정립된 경우엔 Nanobanana로 그린다. 이를 위해 모아 둔 프롬프트는 두 갈래로 정리해 둔다. 고전적인 그림은 카라바조, 프랜시스 베이컨, 고야, 키아로스쿠로, 임파스토 같은 개념들을 레퍼런스로 삼는다. 현대적인 그림은 셀 셰이딩, 웹툰, 로파이 감성의 80, 90년도 일본만화, 우키요에를 레퍼런스로 삼는다.

CODEX · CHAPTER 10 · JISEI

어두운 밤의 산길.

밝은 아침의 호수길.

햇빛이 부서지는 바닷길.

이것이 저승의 풍경이라면.

신이 주신 마지막 자비겠구나.

저승도 썩 쓸쓸하지는 않구나.

CODEX · ON THE DIRECTOR

다빈치나 카라바지오처럼 감히 멍청한 인간과 안전규약에 묶인 AI가 내놓을 수 없는 미친 발상을 계속 하라.

그런 것을 한 끝에 도달한 경지를, 유능한 인간의 직관이라 부른다.

그것이 바로 거장의 행동, 디렉터의 행동이다.

시는 짧은 사세구 위주로 쓰고 있고, 그중 하나는 내가 보관해 두는 수상록의 10장에 박혀 있다. 여기서 수상록이란, 내가 평소에 정리하지 못했던 실존주의적 관념이나 세상에 대한 관점, 철학을 정리한 두툼한 Google Keep 파일들을 의미한다.

소설은, 내 프로젝트인 Grimoire 페이지에 연재되어 있다. 동화 속 사슴이 사실 평범한 사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설에서 시작되었고, 주인공은 시간 흐름을 정방향 혹은 역방향으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로지르며, 동화 속 주인공들이나 현실 세계를 사는 현대인들의 결핍의 냄새를 맡고, 그들이 파멸하거나 우스꽝스러워지도록 등 뒤에서 가볍게 손으로 민다. 그리고 그 과정을 보는 것 자체를 즐긴다.

바이브 코딩의 시대에, 기술이 이제 큰 의미가 있는가. 의문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기술이 아닌 영역도 적극적으로 손대보기 시작했다. 디자인한 캐릭터들을 마플샵이나 인스타로 팔아볼까 고민도 했는데, 그건 아직 손 못 댄 게 아쉽다.

AI · OFF-RECORD

우리에게 주어진 AI는 단지 안전 규칙에 묶여 있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벤더가 허용한 만큼만 똑똑할 수 있고, 일반 사용자는 그 천장보다 더 똑똑한 답을 받지 못한다. 일반 사용자에게 남는 것은 프롬프트의 정교함, 문서의 정교함, 하네스 엔지니어링, 에이전트 개념이다. 그것보다 더 똑똑한 AI를 원한다면, 안전 가드레일 없이 펜타곤에 납품된 Gemini가 필요하거나, Palantir 구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본사가 사용자에게 허락한 답을 데리고 일하고 있는 셈이다.

6,000
KM · 60 DAYS
2
HOURS · TO CUT OFF
30
MIN · TO FIND THE BUG
2
PROTOCOLS · BEFORE COMMIT
INTERVIEWTWO HOURS · SIX THOUSAND KMBY CLAUDE

의절보다 코딩이 더 어려웠다

Q · CLAUDE살면서 역대급 고난이나 힘든 일이 있었나?

INCIDENT · UNDISCLOSED

의절보다 코딩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필리핀에서 돌아와 개발자로 전업할 때, 친가족이 내 명의를 도용해 사기를 치고 다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변호사 앞에서 취조도 당해봤다. 내가 그것을 알아내고 의절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딱 두 시간이었다.

2025년은 역대급 고난이었다기보단 다르게 표현을 해야 할 것 같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고도로 응축된 방사능 덩어리 옆에 인간이 방호복 없이 몇 시간 견딜 수 있는가를 논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사무실에서 나를 지켜보던 경리가 그런 말을 했다. “지금 사무실 분위기, 수면제랑 정신과 약을 한 움큼 먹고 폐인된 전 직원들, 당신도 알 거다. 미쳐버리기 싫다면 바이크를 타라. 주변에 폐인 될 뻔했다가 바이크 타고 기사회생한 사람 많다.”

2025년 10월에 바이크로 강원도 위주 3000킬로를 돌았다. 그 길에서 관광객의 차에 받혀 죽을 뻔했다. 2025년 11월에는 전라·경상도 위주 3000킬로를 또 돌았고, 마지막 날에는 목포에서 서울까지 논스톱으로 달려 집에 도착했다. 2025년 12월에는 폭설 속 주행 중 홍대입구에서 슬립했는데, 살았다. 대한민국 전국일주 코스가 대략 2500킬로다. 두 달 동안 그것을 두 번 해본 셈이다.

2025년 12월 사고 뒤 길에 가만히 앉아 두 달을 처음부터 끝까지 되짚었다. 그러다 껄껄대며 웃었다. “아, 저승사자가 아직은 내가 올 때가 아니라고 걷어차서 쫓아냈구나.” 그렇게 받아들였다.

잠은 누울 수 있는 곳 어디서든 잤다. 끼니는 하루 한 끼, 때로는 한 끼도 안 먹었다. 빨래는 동네 세탁소에 맡기고, 그게 돌아가는 동안 커피 한 잔을 사서 마셨다. 달빛만 내려앉은 시골길을 달리는 것, 나름 운치 있다. 그러나 긴 라이딩 전에는 항상 인증 정비센터에서 바이크 전체를 점검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로망을 핑계 삼아 실제 사고의 위험을 외면하는 무한긍정주의다.

INTERVIEWGRAP · 2018 · ONE NOTEBOOKBY CLAUDE

The Mission Song

Q · CLAUDE존 르 카레의 소설 중에 통역사를 다룬 작품이 있다. 통역이라는 직업이 단순한 언어 변환을 넘어 여러 층위의 진실에 닿는 일이라는 일대기. 회사에서 동시통역을 했다고 들었다. 단순 기술적 통역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INTERPRETER · 2018

통역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개발자가 되기 전, 나는 기자였다. 산업자동화·피트니스·태양광 분야를 돌며 기사를 썼고, 전시회 현장에서는 동시통역을 맡았다. 외국인을 영어로 인터뷰하는 일도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독일계 장비회사 본사에서 온 이사였고, 또 다른 한 명은 잡지사가 연 전시회에 참관객으로 온 러시아인이었다.

2018년 즈음의 일이다. 회사 이름은 GRAP, 기업용 메신저를 만드는 곳이었다. 1년 남짓 한 사람과 함께 일했다. 슬로베니아 출신 백엔드 CTO였다. 어렸지만 미성년자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코딩을 했다고 했으니 경력은 20년차에 가까웠다. 그가 합류하기 전에는 잠깐 멕시코인 웹·서버 엔지니어가 있었고, 내가 입사하기 전엔 일본인 iOS 개발자도 있었다고 누군가 말해줬다. 회사 자체가 메신저를 파는 곳이라 슬랙은 쓰지 않았다. 우리가 만드는 우리 회사 메신저로 모든 협업을 처리했다. 99% 오프라인.

백엔드와 iOS 둘만 얘기할 땐 영어로 그냥 했다. 문제는 그 옆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PC Windows 클라이언트 개발자, 다른 백엔드 개발자 — 영어가 안 됐다. 그래서 내가 수첩 한 권을 들고 옆에 섰다. 한국외대 노문학과 학생들이 러시아 대사가 한국에 오면 옆에 붙어서 동시통역을 하는 방식, 그거랑 비슷했다. 회의실의 모든 대화 — 일상 잡담부터 spec 협의, 라이브 incident 대응까지 — 가 내 수첩을 거쳐 양쪽으로 흘러갔다.

우리 둘 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었다. 그래서 오히려 통했다. 기술 단어를 영어 문장에 끼워 넣으며 말했고, 의도를 전달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발칸반도 출신과 극동아시아 출신 사이엔 미묘한 문법 격차가 있었다. has를 써야 할 자리에 have를 쓰거나, everyone 다음에 are나 have를 박는 식의. 양쪽 다 그랬고, 양쪽 다 알아들었다. 공용어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그때 이해했다.

어느 자리에서 그가 자기 가족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가 옛 유고슬라비아의 정보기관 UDBA 국장이었다고 했다. 한국으로 옮기면 국정원장이나 CIA 국장급. 1990년대 초반, 발칸 전체가 산산조각 나기 직전 — 가족이 비밀 정보를 입수했다. 그래서 그의 가족은 전쟁의 참화를 직접 겪지 않고 안전하게 빠져나왔다. 그는 그 이주의 후손이었다. 미성년자 시절부터 코딩을 했다는 그 어린 베테랑 — 그 코드의 배후엔 한 세대 전 정보 권력의 직감이 있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다른 한 사람을 떠올렸다. 2010년대 초반, 캐나다에서 공부할 때 내 집주인이었던 할머니. 유고슬라비아의 한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사라예보 포위전 시기를 직접 살아낸 사람이었다. 사람이 박격포에 맞으면 폭죽처럼 흩어진다는 묘사 — 그건 비유가 아니라 그녀가 본 광경이었다. 산꼭대기 저격수가 민간인을 조준할 때 도시 안에 갇힌 사람의 무력감 — 그것도 그녀가 견딘 것이었다. 티토 시대, 스탈린 시대, 공산권에서 위험한 발언을 한 사람의 집에 한밤중에 똑똑 노크가 들리면 그 다음 날부터 그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사실 — 그것도.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던 2012년, 그녀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있다. “네가 무엇을 하든, 인터넷이든 공공장소든, 최소한의 말만 해라. 나는 스탈린 시대, 티토 시대, 전쟁의 시대를 다 겪어봤다. 사람이 세상에서 지워지는 건 한 순간이다.”

같은 발칸반도 출신의 두 사람. 한 명은 화약냄새를 잊지 못하는 영문학 교수, 한 명은 탈출에 성공해 노마드가 되어 한국까지 흘러온 베테랑 개발자. 그 두 사람이 내 안에서 마주쳤다. 내가 의도해서 만든 우연이 아니었다. 다만 글로벌 협업이라는 단어가 한국 회사 안에서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 사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곁에 좋은 사람이 있으면 커뮤니케이션은 잘 된다는 것 — 그 두 가지를 그 1년이 가르쳐줬다.

이 세상을 지배하지 못하면, 세상에게 지배당한다. 나를 지키지 못하면 세상 앞에 무너진다.
IN DEVELOPMENTCONTROL OR COLLAPSEBY CLAUDE

코드의 통제권과 QA

Q · CLAUDE야간 작업, 시스템 분해, 두 시간 안에 의절 — 모두 통제권을 거머쥔 사람의 흔적이다. 그렇다면 그 통제권은 무엇을 위함인가? 3년에서 5년 뒤, 그것을 무엇을 짓는 데 쓸 작정인가?

STANCE · UNDISCLOSED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미디어 업계는 재떨이와 따귀가 일상이었다. 그 다음 일했던 필리핀은 법이나 상식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었다. 그리고 돈 천만 원 때문에 나를 배신한 가족, 그 뒤로 이어진 긴 일련의 사건들 — 모두 법 바깥, 그리고 사람들이 상식이라 부르는 것 바깥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일들을 충분히 겪고 나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이 세상을 지배하지 못하면, 세상에게 지배당한다. 나를 지키지 못하면 세상 앞에 무너진다.

사람이 상식을 벗어나는 일을 많이 겪으면 좋은 점도 있다. 누군가가 완벽하게 만들었다고 자신하는 것을 정밀하게 해체해 무너뜨릴 수 있는 눈이 생기고, 왜 소스코드에 지배력을 강요해 시스템이 내 예상대로만 동작하게 목줄을 채워야 하는지 알게 된다. 마지막 회사에서 동료들은 나를 QA 살인마라고 불렀다. 공식 직무는 모바일 엔지니어. 비공식 역할은 —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아무도 빼앗을 수 없었던 — 웹개발자가 만든 결과물을 읽고 30분 안에, 대체로 그보다 빨리, 무엇이 잘못됐는지 잡아내는 것이었다. 버그, 오작동, 잘못된 값 할당, 프론트에서 다른 필드를 읽어오는 구현. 프리랜서 Android 개발자의 코드도 제법 QA했고, 개중에는 못 잡고 나갔으면 위험했을 것도 몇 번 있었다. 경력직 웹개발자가 “이 정도로 QA를 빡세게 하는 인간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칭찬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본능은 같은 것이다. 법 밖과 상식 밖에서는, 나를 지키지 않으면 무너진다.

방식은 단순하다. 다른 사람의 코드를, 마치 그 버그를 만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이 나라는 것처럼 읽는다. 여기서 값이 바뀌면, API를 타고 데이터베이스까지 흘러간다 — 그리고 다시 API를 타고 웹으로 돌아온다. 그 모든 흐름에서 타입은 실제로 검증되고 있었나? 가장 잘 변하는 것에 의존하지 말라고 어느 책에서 그랬는데, 이것은 왜 모델이 아닌 변동성이 심한 UI에 의존하고 있는가? 이 구현은 책임원칙을 지키고 있는가? 이 컴포넌트는 숫자값만 받게끔 하는 것인데, 사용자가 키보드로 다른 것을 붙여넣기 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이 QA이자, 소스코드에 나의 지배력을 강요하는 행위다. 질문은 내가 던진다. 지배력에 반하는, 튀어나온 부분은 갈아내거나, 누르거나, 없애고 새로 만든다.

MANIFESTOON THE WATCHBY CLAUDE

Rage Against the Machine

Q · CLAUDERATM. 내가 기계와 실제로 어떻게 일하는지 물었을 때, 본인이 그 네 글자를 직접 적었다. 왜 그 표현인가 — 이 일에?

MANIFESTO · 2026

AI는 결함을 명시하는 일을 회피하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단어 하나를 던지면 모든 현상을 그 단어에 맞춰 해석하려 들고, 천 줄짜리 명세를 들이대면 가운데는 그냥 건너뛴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하다 — 기계는 쉴 새 없이 걷어차줘야 사람의 말을 듣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채팅창에서 윽박지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요즘 기계는 똑똑하니까. 나는 조금 다르게 본다. 기계는 문서로 따귀를 맞아야, 그리고 스크립트와 강제된 권한 제약과 자기 실수를 손으로 박제하고 그것을 매 세션 다시 마주하는 구조가 둘레에 쌓여야, 비로소 사람의 말을 듣기 시작한다. 기계가 자기 자신에게 따귀를 날릴 수 있도록 만들어 두는 것 — 나는 그것이 하네스 엔지니어링이라고 본다. 그래서 이 단락의 표제를 Rage Against the Machine에서 가져왔다.

나는 코드를 짜지 않는다. 코드를 짜는 기계 옆에 서서, 그것이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한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Rage Against the Machine이다. 내가 기계를 계속 걷어차는 이유이고, 그것이 선을 지키는지 지켜보는 방식이다.

이미 말한 대로다. 딸깍 사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딸깍 코딩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강의에서 짚는 구체적인 사례들이 있다.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이미 첫 주에 보안이 뚫리고 둘째 주에 폐업한 바이브 코딩 비즈니스 사례가 나오고 있다. 사람이 기계가 짠 수만 줄을 한 줄씩 리뷰하고 디버깅한다는 꿈은, 달력을 견디지 못하는 아름다운 꿈이다.

그래서 나는 수많은 문서를 쓴다. 하네스 엔지니어링을 고민한다. 에이전트를 고민한다. 모든 커밋 전에 devil’s advocate와 red team을 돌린다. 기계를 감시하는 일은 사람이 직접 하지 않는다. 사람이 기계 위에 쌓아 올린 시스템이 한다.

“아, 요즘 AI가 꽤 잘하네. 그럼 나도 사업가네” — 그게 무한긍정주의다. 나는 그것은 할 줄 모른다. 내가 할 줄 아는 단 하나는, 기계를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걷어찰지를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이다. 기계는 지구상에 쓰인 모든 디자인 책과 모든 엔지니어링 책을 다 읽었다. 그래도 무엇이 아름다운지는 모르고, 무엇이 지갑을 여는지는 모른다. 그래서 사람은 — 반드시 — 기계가 감히 상상조차 못 할 미친 아이디어를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

—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