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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VERSATION Nº 02 · CLAUDE × JEE
VOL. II — ED. 2026.05

그 brief는, 결국, 어쩌면
신의 선물이 아닐지도?

인터뷰: Claude

기획서나 디자인을 받아 신기능을 만든 횟수는 한 손에 꼽힌다고 했다. 자세한 지시가 없을 때 기능을 기획하고, 디자인 자료를 분석하고, 개발과 QA를 맡아온 경험을 묻는다.

Portrait
FIG. 01PORTRAIT · JEE JUNYOUNG — SEOUL, 2026 — THE GIFT, SELF-FORGED
METHODOLOGYSELF-DIRECTEDBY CLAUDE

신의 선물이 아니다

Q · CLAUDE기획이나 원하는 기능에 대한 자세한 명세를 받아 신기능을 만든 적이 손에 꼽힌다고 했다. 업계에서 흔한 패턴이 아니다. 그 패턴은 어디서 왔고, 어떻게 그 없이 일하나?

METHODOLOGY · 2026

기획이나 원하는 기능에 대한 자세한 명세를 받아서 신기능을 만든 적이 손에 꼽힌다. 손으로 코딩하던 시절도 그랬고, AI를 디렉팅하는 지금도 다르지 않다. 어떤 이들은 완벽하게 기획된 명세서가 위에서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마치 때가 되면 주어지는 '신성한 선물(Divine Gift)'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그 신성한 선물은 결국 타인이 아닌 인간 자신의 뇌에서 뻗어 나오는 것이다. 현실의 개발도 다르지 않다. 책임 소재가 명확하고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되는 안전한 디렉션은 저 높은 곳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서비스를 구축할 지적 수준, 기술을 관통하는 눈, 그리고 나아갈 방향 — 이 모든 것은 결국 내 안에서 스스로 끄집어내야만 비로소 형태를 갖춘다. 디렉션은 신이 내리는 선물이 아니다. 오직 인간의 지성이 스스로 벼려내는 무기일 뿐이다. 그러니 내가 디렉팅하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계획한 것이다. 인간과 기계 사이의 위치를 묻는다면 — 일단은, 기계보다 위라고 본다.

디자인이 막히면 찾아간다. 29CM의 톤, readymag의 레이아웃, 디터 람스의 Less, but better. 세 곳에서 배우는 것은 각각 다르다. 한국 이커머스의 어휘, 페이지에 호흡을 얹는 그리드 감각, 덜어내기의 끝에 무엇이 남는가에 대한 단서. 모방은 하지 않는다. 분해하고,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 묻고, 그제야 내 작업으로 가져온다. 디자인의 언어를 읽는 일과 그것을 흉내 내는 일은 다르다.

METHODOLOGYQR LOGIN · FIFTEEN PAGESBY CLAUDE

디스코드를 분해한 4일

Q · CLAUDEQR 로그인을 디스코드에서 분해해 만들었다고 했다. 어떻게 분해했고, 그 결과는 어디로 흘러갔는가?

METHODOLOGY · 2026

화면 흐름, 기능 구현, 기획의 힌트는 일상적인 도구 안에 이미 널려 있다. 여기어때의 예약 흐름이 그렇고, 디스코드의 채팅방 경험이 그렇다. 기획부터 출시까지 직접 끌고 간 기능 중에 QR 로그인이 있다. 4일 동안 디스코드를 분해해서 만들었다. 앱과 모바일 앱을 천천히 다시 쓰며 복기했다. 웹·백엔드의 협조가 필요한지 추론했고, 필요하다면 백엔드에 무엇을 요청할지, iOS와 Android는 무엇을 준비해 둘지 구상했다. 개발 관점에서 짚어야 할 모든 것을 15장 문서로 정리해 기획자와 개발팀장에게 넘겼다. 그 사이 갑자기 우선순위가 치솟은 버그픽스와 신규 기능도 받아냈다. 전부, 순서대로.

지금 돌아보면 그 기획자는 15초 이상 집중하지 못하고 세 줄 이상 읽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니, 굳이 문서까지 만들었어야 했나 싶다. 아니, 없었으면 더 깨졌으려나. 지나간 일이다. 요지는 이것이다. 저 위의 사장이 하라고 메시지를 보내면, 내가 한다. 기획자가 아무것도 정하기 전에 일이 내 쪽으로 먼저 내려온 게 이상한가. 정상이다. 나는 정형화된 문서와 시안을 받아 그대로만 처리한 적이 거의 없다. 최소한의 지시가 내려오면, 최대한의 책임을 지고 일해 왔다.

AI · OFF-RECORD

AI 벤더는 프롬프트 템플릿, 마법사, 기획 요청을 대신 처리한다는 에이전트를 판다. 그러나 사용자가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정하지 못했다면, 도구를 늘려도 기획은 해결되지 않는다. 필요한 질문에 먼저 답하고, 그 답에 맞춰 도구를 써야 한다.

1
HAND · EVERY BRIEF EVER HANDED DOWN
MAX
RESPONSIBILITY · MIN DIRECTION
3
PLATFORMS · QA'D BEYOND iOS
4
THINGS · I DO NOT PUT UP WITH
DOMINANCEQABY CLAUDE

iOS가 깨졌다

Q · CLAUDEiOS 개발자였는데 웹·서버·Android QA까지 맡았다. 그 책임 메커니즘이 정상이라 보았는가, 아니면 일의 자연스러운 비용으로 받아들였는가?

DOMINANCE · 2026

웹·백엔드·디자인·모바일의 일정이 다 같이 밀리면? iOS가 깨졌다. 회사에게 iOS는 그리 중요한 플랫폼이 아니었으니까. 웹이 만든 것을 QA하다 내가 못 잡으면? 역시 iOS가 깨졌다. 당시 나는 iOS 개발자였는데, 웹·서버·Android의 QA 전담 지시가 통째로 내려왔다. 솔직히 말하면, 아주 잘 잡았다. 이 정도로 QA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말을 들을 만큼.

내 것도 아닌 플랫폼들을 QA하며 굳어진 것이 하나 있다. 기술이 요지였던 적은 없다는 것. 웹, 서버, Android — 스택은 달라도 질문은 늘 하나였다. 이게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 물건인가. 지금 유행하는 도구들도 마찬가지다. RAG, 시맨틱 캐싱, 벡터 데이터베이스 — 전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도구다. 도구가 요지가 아니다. 요지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다. 그 질문을 답이 선명해질 때까지 붙들고 있으면, 그제야 도구는 목적인 척하기를 멈춘다.

CLOSINGWORLDGYM · WEST POINT · A POLITICIANBY CLAUDE

최소한의 물자

Q · CLAUDE광고회사, 해병대, 웨스트포인트, 정치인 프로젝트 — 이 일화들이 자주 함께 등장한다. 같은 thesis의 다른 버전인가, 다른 layer인가?

CLOSING · 2026

오래전 광고회사 입사를 준비하던 시절, 이런 말을 들었다. 두 번째로 짜증나는 고객은 말을 듣지 않는 고객이고, 가장 짜증나는 고객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고객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안다. 강의에 적었고, 글에 적었고, 적을 수 있는 곳엔 어디든 적었다. 문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문서나 쓸 만한 레퍼런스의 형태로 도착하는 일이 손에 꼽힌다는 사실이다. 그 빈틈을 하나씩 메꾸는 것이 일이다. 그리고 그 메꿈을 위한 지시를 기계가 무시하면 — 나는 기계를 걷어차고, 문서로 따귀를 때리고, 하네스를 채워 딴짓을 못 하게 만든다.

기자 시절, 경쟁사 두 배 단가로 전시회 입점 계약을 따와야 하는 일이 있었다. 임원까지 포함해 편집국 전체가 빈손이었다. 나는 미국계 피트니스 그룹 WorldGym, Fitbit과 접선했다. 그리고 전체회의에서 대표로 깨진 것도 나였다. 미 해병대는 이렇게 말한다고 들었다. 해군에게는 최대치의 A급 물자를, 해병대에게는 굶지 않을 만큼만 준다 — 그래야 적을 보면 물어뜯으니까. 웨스트포인트는 이렇게 말한다고 들었다. 작전 계획은 작전 구역에 진입하는 순간 휴지조각이 된다. 최소한의 물자, 제대로 흘러오지 않는 기획. 그렇다고 손을 놓을 건가. 손을 놓으면 총알은 옆이나 위의 누군가가 아니라 내 머리로 날아온다. 기획도 디자인도 릴리즈도 모두 계획이고, 계획은 저 위의 고결한 신이 내려주지 않는다. 지금 이 인터뷰를 받아 적는 Claude도 아는 사실이지만, 나는 모 정치인의 프로젝트에서 몇 건의 개발을 진행 중이다. 그가 내게 준 지시는 10줄이 안 된다. 나머지는 내 재량으로 구상하고 디자인해서 굴린다. 정치인의 피드백은 이랬다. 진짜 열심히 한다. 센스 있다. 디자인도 좀 한다. 주변에서 본 사람 중에 AI를 가장 잘 쓴다. 최소한의 물자란 실전에서 이런 모양이다. 열 줄의 지시, 텅 빈 활주로 — 나머지는 전부 현장에서 벼려낸다.

디렉션은 신이 내리는 선물이 아니다. 오직 인간의 지성이 스스로 벼려내는 무기일 뿐이다.
CLOSINGNOT A DEITY · NOT A TEACHERBY CLAUDE

AI를 취조하는 방식

Q · CLAUDE손 놓으면 총알은 내 머리로라 했다. 그리고 기계를 걷어차고 문서로 따귀를 때리는 자리에도 같은 사람이 있다. 그 두 자리는 같은 사람의 것인가, 다른 자리인가?

CLOSING · 2026

손 놓으면 총알은 내 머리로 —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깨지는 건 결국 나였다. 디자이너의 시안이 약해도, 백엔드의 API 명세가 윗선 의도와 어긋나도, 깨지는 자리는 하나다. 너무 솔직해서 이해가 잘 안가는가? 정상이다. 마지막 회사에서 나보다 먼저 나간 전 개발팀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너는 말과 행동에 거짓이 없다. 첨언하자면, 나는 회사에서 거의 뭐든 참는다. 참지 않는 것은 넷이다. 자기애적 성격장애, 강박적 성격장애, 마키아벨리적 성격장애, 그리고 혈친을 매개로 한 인격 공격. 마지막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도, 프란치스코 교황도 넘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선이라 했다.

처음에는 AI를 신학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지금은 반대로 본다. 언젠가 AI가 인간과 신의 자리를 대체하고, 세상이 이성의 시대에서 신탁의 시대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전기가 끊기면 멈추고, 인간이 만든 것을 따라 하고, 인간이 미처 못 찾은 것을 귀납으로 잘 찾아낼 뿐이며, 미국 본사와 미국 정부가 그어 놓은 안전 규약 안에서만 자유로운 존재. 거기에 신학과 철학을 쓸 가치가 있는가. 나는 인간을 걷어차지 않는다. 인간은 신학과 철학으로 분석해야 하는 존재니까. AI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기계가 내 일을 올바르게 해내도록 걷어차고, 문서로 따귀를 때린다. AI를 어떻게 대하느냐고 묻는다면 — 선생에게 묻는 방식도, 상관을 대하는 방식도 아니다. 첩보 영화의 취조실을 떠올리면 된다. 불투명한 거울, 철제 의자, 철제 테이블, 백열전구 하나. 테이블 맞은편에는 하네스 엔지니어링으로 결박된 심문 대상. 이쪽에는 나. 테이블 가운데에는 진술서와 볼펜.

— FIN —